♥♥ 한걸음 ♥♥/일상

아들의 죽음을 적은 < 이순신 >장군의 글과 내 아들넘

날 사랑하심 2010. 7. 10. 08:51

아들이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는가보다. 숙젠가? ㅎㅎ... 하여튼 아들방에서 보이길래 내 머리맡에 옮겨 놓았다.

아침나절 아무데나 펴서 읽었는데 마음에 남아 떨쳐 버릴수가 없어 적어 본다.

당분간은 머리맡에 다른 책들이 난중일기에 밀릴 것 같다.^^ 

 

 

정유년 1957년 선조30_ 53세

 

10월

 

14일(신미) 맑음. 새벽2시쯤 꿈에 내가 말을 타고 언덕 위를 가다가 말이 헛디디어 내 가운데 떨어지긴 했으나 거꾸러지지 않았는데, 끝에 아들 면이 엎드려 나를 감싸 안는 것 같은형상을 보고 깨었다.무슨 조짐인지 모르겠다. 늦게 배 조방장과 우후 이의득이 방문했다.배 조방장의 종이 경상도로부터 와서 적의 정세를 전했다. 황득중이 들어와서 보고하기를 "내수사의 종 강막지가 소를 많이 치기 때문에 12마리를 끌어간 것이라"고 했다. 저녁때 어떤 사람이 천안으로부터 와서 편지를 전하는데, 미처 봉함을 뜯기도 전에 뼈와 살이 먼저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겉봉을 대강 뜯고 둘째 아들 열의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 두자가 씌어 있어 면의 전사를 알고, 간담이 떨어져 목놓아 통곡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못하신고, 간담이 타고 찢어지는 듯하다.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마땅하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이런 어긋난 일이 어디 있을 것이냐. 천지가 캄캄하고 해조차도 그 빛이 변했구나. 슬프고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너는 어디로 갔느냐. 남달리 영특하기로 하늘이 이 세상에 머물러 두지 않는 것이냐.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앙화가 네 몸에 미친 것이냐. 내 이제 세상에 목숨을 부지한들 누구에게 의지할 것이냐. 너를 따라 함께 죽어 지하에서 같이 지내고 같이 울고 싶건만 네 형, 네 누이, 네 어미가 의지할 곳이 없으니 아직은 참고 연명이야 한다마는 내 마음은 이미 죽고 형상만 남아 있어 울부짖을 뿐이다. 하룻밤을 지내기가 길고 길어 1년 같구나. 밤 9시경에 비가 내렸다.

 

15일(임신) 종일 바람과 비.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종일 뒹굴었다. 여러 장수들이 위문하러 오니 내 어찌 얼굴을 들고 대햐랴. 임홍, 임종형, 박신 등이 적세를 정탐하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흥양과 순천 앞바다로 나갔다.

 

16일(계유)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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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 소식을 편지로 전해 들은 아비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된다.

나 또한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니 그 마음이 느껴져 내마음도 출렁대며 흔들린다.

자식을 잃고도 가족에게 달려가지 못하고 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는 모습과 늘 하던 것처럼 일기를 적어 가는 모습이 참 애처롭다.

 

덕분에 나도 아들녀석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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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목요일) 저녁에 비가 조금 내렸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두번이나 받지 못했다.

저녁시간 남한산성이라며 통화를 했다.

그래도 에미 생각은 하는게야. 전화통화가 될 때까지 자꾸 하는 것 보니.. 하는 생각에 뿌듯했다.

4주정도 못 보는 사이에 한번쯤 전화하겠다는 언질이 있었는데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늦은 시간 화상전화가 왔는데 받지를 못했다.

물론 내 쪽에서 하는 전화 받을리가 없었다.

그런 녀석이 고마왔다.

무엇을 보여 주고 싶어서 화상전화를 걸었을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었던게야...

우린 화상전화를 여간해서 하지 않는데

녀석이 화상전화를 한 것은 무엇인가 보여주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어미를 생각하는 것도 고맙고

보여주고 싶어하는 마음도 고맙고

녀석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했다.

 

당분간 녀석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

녀석에겐 힘들고 어려운 시간일게다.

그러나 잘 견디고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

녀석의 안녕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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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이 있어 행복하고

그래서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