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정겨운 그림을 만났습니다.
사진 한컷 한컷이 다 추억속의 어느날이 됩니다.
옛사람들의 농사짓는 모형입니다.
옛사람들의 농사짓는 모습이라 하는데
그 모습들을 다 기억하고 있으니
저도 옛사람인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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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된 농기구,, 많이 보고 사용했습니다. 얼마전까지도 집 한쪽에서 굴러다니곤 했는데 지금은 없을겝니다.
아버지가 소와 함께 논밭을 갈면서 이~랴~~하면서 소에게 이르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버지는 빨리가자는 뜻으로 이~~랴~~ 했을까요? 소는 아버지와 손발을 맞추며 일을 잘 했습니다.
5월 16일이 결혼기념일인 제가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친정엘 갔는데 마침 모내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신랑과 새신부는 손바닥만한 논을 둘이 모내기 하겠다 나서서 열심히 일을 했었습니다. 아래 그림처럼 손바닥만한 논...
그리고는 큰 논을 맡으셨던 어른들의 칭찬을 듬뿍 받았습니다. 덕분에 새신랑은 아주 일 잘 하는 사위로 동네에 소문이 났지요.
그 날이 엊그제 같습니다.
정겨운 논둑길,,, 부지런한 농부의 논둑은 항상 새 흙으로 덮여있었는데
풀이 나지 않게 논바닥의 진흙을 퍼서 바르는 것이었지요.
우리아버지의 논둑은 진흙으로 도배를 하고,
그 좁은 논둑길도 아까와 한줄, 두줄 콩을 심기도 했습니다.
논이 있는 언덕 아래에는 맑고 깨끗한 내가 흘렀습니다.
냇물에 흙 묻은 손발닦고 냇가에 앉아 새참을 먹거나, 점심을 먹곤했습니다.
목이 마를때 그 냇물을 먹고, 날이 더울땐 그 냇물에 멱감고, 빨랫감 가지고 나와 빨래도 했습니다.
가을이면 논밭에 줄을 띄우고, 돌을 넣은 깡통을 매달아 댕그렁 댕그렁 흔들며 새들을 쫓았습니다.
그리고 타작하는 날이면 어린우리들은 따가운 볏단을 나르는 것이 우리의 몫이 었습니다.
가끔은 탈곡기에 발을 올려 어른들 틈에 껴 보거나
어른들이 쉬는 참에 탈곡기에 벼 터는 것을 해 보곤 했습니다.
따갑고 힘든 일이었는데 그 시절엔 다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아래 그림 오른쪽에 오리세마리 보이나요? ㅋㅋ,,, 사진 찍을때는 몰랐는데...
거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기억의 우리집은 초가집에서 부터 시작합니다.
가을이면 초가지붕을 새로 해 얹는 행사를 하곤 했는데
학교를 다녀 온 어느날, 동네의 어른들이 모여 그 초가지붕을 다 긁어 내리더니
양철지붕으로 새로 해 올렸습니다.
어린 시절이라 좋은 것은 잘 몰랐는데
여름날 비가 내리는 날의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
사진속에 흰둥이가 보이네요.
우리집은 개가 안 된다고 하시며 개를 키우지 않았습니다.
국도 옆에 집이라 개를 키우면 개라 자꾸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러나 소는 늘 있었는데 소를 한마리 팔아서 오빠 대학자금을 대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먼 길에 큰 현금 들고 가는 울 오빠에게 아버지는 보자기에 돈을 싸서 맨 몸에 두르게 하시고
그 위에 옷을 입게 했지요.
대문밖엔 큰 마당이 있었는데 타작을 할때 사용되는 마당입니다.
겨울을 지내고 나면 아버지는 새 흙을 퍼다 붇고 왕겨를 뿌리고 물을 뿌린 후
우리에게 밟고 다니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신나서 밟고 왔다 갔다 했는데
그것이 마당을 고르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술, 담배를 안하는대신 떡을 좋아하셨습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바로 떡을 만들어야 했는데
그때는 찹쌀을 쪄서 사진처럼 절구에 넣고 찹쌀을 쪄서 콩고물에 묻혀내야 했습니다.
여유있게 떡을 하는 때엔 콩시루떡을, 팥나오는 팥시루떡을 하셔서 집에 늘 떡이 있어야 했습니다.
떡을 하시는 날엔 밥을 못하게 하시었는데 왜 맛있는 떡을 먹지 밥을 먹느냐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린 떡을 안 먹고 밥이 더 맛있다고 밥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떡을 잘 안 먹습니다.ㅋㅋ....
항아리를 이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새참이랑 점심을 나를때는
그림처럼 머리에 이고 다니거나 리어카를 사용했는데
논둑길 다니기에는 이고 다녀야 편하고 좋았습니다.
ㅋㅋ,, 이건 제가 모르는 그림입니다.
제게도 하지만 이런 날이 분명 있었을겝니다.^^
ㅋㅋㅋ,, 사진 덕분에 어린시절을 한바퀴 돌아왔습니다.